no.88
여전히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프리다 칼로의 집,
그로부터 50년 이후.
2019년 2월 브루클린 박물관에서 열리는 프리다 칼로: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Frida Kahlo: Appearances Can Be
Deceiving에 전시된 테후아나 Tehuana와 우이필 Huipil와 치마, 그리고 그녀의 자화상
1938년에 그녀의 첫 전시회를 뉴욕에서 열었을 때, 보그 Vogue는 그녀를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부인이라고 소개했다. 그 이후 그녀 특유의 브이 형태의 일자 눈썹과 큰 갈색 눈, 연한 콧수염에 오므린 입술은 멕시코 전 지역에 널리 알려졌고, 당연히 예술 역사상 그 어떤 여성도 프리다 칼로만큼 자신에 대한 칭송을 대중에게 강요하지는 못하고 있다.
프리다 바비 모형과 피부 밝기 효과가 가미된 프리다 스냅챗 snapchat 필터 등을 엣시 Etsy나 이베이 ebay 사이트에서는 그녀의 수십, 수백까지의 골동품들을 볼 수 있다. 몇 년 전에 비욘세 Beyoncé가 칼로처럼 옷을 입어 “흠잡을 데 없는”, “죽이는”이란 수식어를 얻었고, 비욘세의 1000명이 넘는 팬들이 달라스 미술관 Dallas Museum of Art에 프리다 옷차림으로 모였었다. 심지어 공화주의자들과 친하지 않은 영국의 테레사 메이 Theresa May 총리는 주요 연설에서 프리다 칼로 스타일의 보석 팔찌를 두르고 나왔다.
Julien Levy가 찍은 칼로, 대략 1938년도. 그는 그녀의 첫 뉴욕 전시회 개최에 기여하였다.
이번주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개관한 <프리다 칼로: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Frida Kahlo: Appearances Can Be Deceiving> 전시는 단순히 한 멕시코 예술가의 예술 작품 전시가 아니다. 그녀의 옷, 보석 그리고 그녀가 집에서 사용하던 생활용품들을 가지고 그녀의 삶을 재조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전시는 이미 2012년 멕시코시티의 프리다 칼로 미술관에서 멕시코 큐레이터 헤네스트로사 Circe Henestrosa에 의해 개최되었던 적이 있다. 이후 이 전시는 2018년 런던 빅토리아 알버트 미술관 Victoria and Albert Museum에도 초대되었다. 우려했던 바는 프리다 칼로 전시회가 요사이 미술관에서 열리는 지난 팝스타들을 소개하는 쇼케이스 형식의 가벼운 전시를 따라갈 것 같은 우려가 있었다. 다행히 멕시코의 헤네스트로사와 함께 일했던 브루클린 미술관의 두 명의 큐레이터, 카트린 모리스와 리자 스몰가 기획에 함께하여 우려보다는 진중한 모습이다. 이번 브루클린 미술관에서의 전시는 새로운 기부 투자자들과 미술관에 소장된 콜롬비아 골동품들로 빅토리아 알버트 때 보다 더 깊고 풍부한 전시이다. (특히 브루클린 미술관은 모든 설명과 라벨을 스페인어, 영어 두 언어로 표기해 놓았다). 멕시코시티에서 온 옷들은 현지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치마나 블라우스 보다 환상적이고 우아하다. 이번 전시에서 350개의 물품들 가운데 회화는 10점이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유명인의 성유물이라기보다는 의상, 보석 그리고 그녀의 척추 보조기는 칼로의 성공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열쇠이다. 프리다 칼로는 10대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번 쇼는 특히 그녀의 장애에 초점을 맞췄다, 그녀의 의상이 예술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말도 안 되는 초점 같지만 그녀의 페르소나(가면을 뜻하는 자신을 감춘 내면의 인격) 적 표출에 매력을 느끼는 추종자들에게 그녀의 숄과 치마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고려해 볼만하다.
프리다 칼로 스타일에 관심과 사랑은 작가로서 삶의 예술에 대한 지위를 높여주었고, 얼마 전에는 프리다 칼로가 미술계의 거장인 ‘디에고 리베라’ 남편보다 더 유명한 화가라는 말도 전해졌다. 물론 디에고 리베라의 명성은 따라가지 못한다. 브루클린 미술관 전시에는 뉴욕 모마 미술관에 소장된 “짧은 머리의 자화상 Self-Portrait With Cropped Hair”을 볼 수 있다. 정물화에도 능했던 칼로는 거물급 스탈린주의 선동가였고 뉴에이지의 키치였다. 이러한 사상이 반영된 그녀의 작품 <우주, 대지, 디에고, 나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 “The Love Embrace of the Universe, the Earth (Mexico), Myself, Diego, and Senor Xolotl”>에서 심령론적 세계에서 젖을 먹이는 대지의 어머니를 상징하고 있다.
프리다 칼로는 자기 폭로에 선구자이자 국가의 대변인, 중요한 사회 활동가이면서 지역의 전위주의적 성향과 유럽, 미국 스타일을 매개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꾸준히 Tina Modotti, Carl Van Vechten, Imogen Cunningham 그리고 Edward Weston과 같은 최고의 사진작가들 앞에 서서 포즈를 취했다. 이번 쇼가 보여주고자 하는 그녀의 진정한 성취는 그녀의 예술이 이젤을 넘어서 뒤샹피언 Duchampian 스타일처럼 그녀의 집, 패션, 그리고 대인 관계로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좋든 싫은 이것은 그녀를 이 시대에 중요한 인물로 만들었고, 오늘날 그녀의 공산주의적 사상과 세계적인 프리다 산업의 대조로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시티 옆에 위치한 코요아칸 Coyoacan 도시에서 1907년에 태어났다. 여섯 살 나이에 그녀는 소아마비에 걸렸고 18살에 그녀가 타고 있던 버스에 차가 돌진해서 척추가 산산조각 났으며, 그녀의 오른쪽 다리를 망가트렸다. 다큐멘터리 사진사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사고가 있은 몇 달 후에 그녀의 모습을 자화상으로 남겼다(이번 전시의 첫 번째 작품으로 전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녀는 어두운색의 긴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있으며 그녀의 손에 책을 들고 있다. 머리는 뒤로 넘겼으며 그녀의 표정은 사뭇 근엄하다. 그녀를 괴롭히는 오른쪽 다리는 반쯤 가려져 있다.
(왼쪽) 중국 스타일의 무늬로 장식된 스커트와 흰색 숄 (오른쪽) 테후아나 치마와 장식된 주황색 우이필 huiipil
비록 유리창에 가려져 흐릿해 화려함은 덜하지만, 그녀의 옷들은 이번 전시의 메인이 된다. 이 옷들은 백화점에 진열된 먼지 쌓인 마네킹들과 같다. (빅토리아 알버트 전시에서는 시각적으로 화려했던 반면 브루클린 버전은 대부분 차분한 느낌이다). 이번 전시에 보여주는 150점 이상의 사진들이 그녀의 진지하며 세심한 정신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스튜디오 사진들 속 그녀의 모습은 물감이 묻은 작업복이 아닌 , 긴 드레스를 입고 있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어두운 망토를 입고 비취 목걸이를 하고 있다.
1938년, 사진 속에 칼로는 두껍게 땋은 머리를 하고 있으며 어깨에는 복잡한 무늬의 스카프 또는 숄을 걸치고 있다. 칼로는 혁명 이후 동시대 도시의 많은 좌파 성향의 사람들처럼, 토착민들을 미화시킨 의상을 입었다. 사진에 보여주는 지그재그 무늬의 스카프는 최신식 레이온으로 짜인 것으로 지금도 손색없는 디자인이다.
테후아나를 입은 자화상 (내 마음속의 디에고), 1943
1929년에 그녀는 20살 연상인 모더니스트 화가(그는 마티스 바로 다음으로 1931년에 MoMA에서 개인전을 가졌다)인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와 결혼했다. 1943년에 그녀가 그린 “테후아나를 입은 자화상(내 마음속의 디에고) Self-Portrait as a Tehuana (Diego on My Mind)”을 보면, 18세기의 Monjas Coronadas 스타일이나 예수의 신부처럼 자신을 묘사하여 남편과 조국에 대한 열정이 엉성하지만 설득력 있는 아이콘으로 묘사되어 있다. 디에고의 형상은 프리다의 일자 눈썹 사이에 타투처럼 새겨져 있으며 그녀의 얼굴은 뻣뻣한 레이스 장식으로 감싸져 있다.
이 작품은 칼로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리베라가 지켜보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에서도 드러난다. 마네킹이 그녀의 옅은 분홍색의 레이스 장식 옷을 입고 있다. 이 자화상은 이들의 친구인 사진작가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Sergei Eisenstein)의 “¡ Que Viva México!” 작품의 여성이 뻣뻣한 레이스 러프가 장식된 테우 아나를 입고 있는 모습과 겹쳐진다.
리베라는 좌파 멕시카니데드의 시인으로써, 그의 젊은 아내가 테후아나를 입고 있는 모습을 좋아했다. 그것은 당시 도시의 파리 부르주아 문화를 선망한 것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그러나 브루클린 미술관은 칼로가 생전에 흰색 레이스 블라우스에 달린 스트라이프 숄, 비단 꽃을 엮은 덮개, 카나리아 노란색과 풍부한 남색의 치마와 같이 아름다운 상징물들을 좋아했던 이유에 좀 더 깊은 측면이 있음을 보여준다. 긴 치마는 결국 절단한 그녀의 쓸모없는 오른쪽 다리를 감추기에 좋았고, 늘어진 블라우스는 코르셋으로 인한 갑갑함 속에 잠시 숨 쉴 틈을 주었으며 약 20번의 수술 이후에 그녀의 척추를 유지하기 위해 그녀가 입었던 교정기가 그 안에 있었다. 가죽으로 된 페달이 있어 그녀의 어깨를 뒤에서부터 받쳐주었던 철제 교정기는 속이 비치는 테후아나의 가운 아래에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라는 제목과 함께 놓여 있다. 이 정형화된 코르셋은 그것 자체가 망치와 낫을 사용해 장식하는 캔버스가 되었다. 심지어 칼로는 침대에만 누워있어야 할 때조차 옷을 다 입고 있었다.
코르셋과 보석들과 의상들은 47세로 생을 마감한 후 카사 아쥴 Casa Azul의 욕실에서 2003년에 발견되었다. 부부는 프랑스 식의 집을 멕시코식의 모자이크로 유명한 후안 오고르만 Juan O’Gorman의 아즈텍 느낌으로 변형시켰다. 그리고 토속적인 조각들과 파피에 마세 papier-mâché 조각상, 색칠된 박과 건강한 잡종 견들로 꾸몄다. 이번 전시에 칼로의 정원 모습을 담은 영상을 통해서 칼로의 작품에 등장하는 영장류들의 소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특히 작가와 함께 응시하는 모습의 원숭이와 함께 하는 자화상“Self-Portrait with Monkeys ” (1943) 속의 울창한 루스시우스키 식물이 있는 멋진 정원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이미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의 100만 명의 팔로우들이 이러한 자화상을 보기 위해 이번 전시에 몰려들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칼로의 소장 작품으로 칼로가 카사 아쥴 Casa Azul에 살았을 때 그렸던 수 백 점의 작품들과 비슷한 십여 점의 레타블로, 익명의 멕시코인이 철 위에 그려서 봉헌된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은 갑작스러운 폭력과 질병의 발생을 묘사하지만, 또한 신의 개입을 묘사한다. 한 사람은 탈파Talpa의 성모에게 감옥에서 아이를 구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또 다른 사람은 차에 짓밟힌 남자의 생명을 구해준 것에 대해 성 트리니티에게 찬사를 보낸다. 각각의 작품들은 고통과 구원의 작은 걸작이다. 이 예술가들의 작품을 수집할 당시의 칼로와 리베라는 작품에 대해 신화나 상품보다 훨씬 더 큰 소명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Frida Kahlo: Appearances can be Deceiving 프리다 칼로: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2월 8일부터 5월 12일까지 브루클린 미술관
출처:www.ny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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