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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오아트 Report no.127] 2019 November Week 4

HELIO REPORT 헬리오 리포트/2019

by HelioArt 2023. 4. 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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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27

몬드리안이 예술가가 되는 방법

Piet Mondrian, Composition with Large Red Plane, Yellow, Black, Grey and Blue, 1921

그의 교훈 1:

자신의 사람을 찾고 그들과 함께 하라

Piet Mondrian, Composition in Oval with Colour Planes 2, 1914

그가 암스테르담에서 젊은 예술가로서 야심 찬 첫 걸을 했을 때는 주목과 찬사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1898년과 1901년에 참가한 권위 있는 예술경연인 Prix de Rome에서 질타를 받았다. 그의 작품은 진부하고 기존의 관습을 그대로 이어갔을 뿐이며 새로운 것이 없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그는 예술적 관습들에서 벗어난 전위적인 시도를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예술적 도전들을 하면서 그는 많은 네덜란드의 급진적인 예술가들과 교류를 왕성하게 하였다. 네덜란드의 화가 Kees Spooner와의 인연으로 몬드리안은 신인상파주의에 대한 기본을 쌓았고 근현대 비평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네덜란드의 현대 미술 운동인 ‘드 스틸’ 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람들과의 교류는 그 만의 추상화 개념을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후 파리와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면서도 추상주의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 받는 한스 장 아르프와 같은 작가들과 예술적 경제적 지원을 서로 하며 그들만의 화풍을 만들어 냈다.

그의 교훈 2: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라

Piet Mondrian, Grande composizione A con nero, rosso, grigio, giallo e blu, 1919-1920

그의 초기 작품들 중에는 초상화가 등장한다. 초상화에 등장하는 그의 페르소나를 통해 그는 여러 시도를 하였다. 작품은 미완성처럼 보이고 의도를 알기 어려운 여러 포즈를 보여준다. 마치 막 찍은 사진들처럼 보이는 작품들은 모두 작가가 의도하여 실험을 해본 작품이었다. 그는 포즈, 사물의 배치 등을 여러 각도로 연습해보면서 작품의 사소한 디테일에 매달렸다. 이후에 그의 관심은 작품 전시 방식에까지 확장되었다. 작품의 배치, 조명의 세기 등에 전시마다 자신이 직접 상세한 지시를 내리곤 했다. 이러한 디테일에 대한 집착은 결국 색상 간의 관계, 색의 명도, 각 색이 가지는 비중의 차이를 고려하는 색의 조화라는 그만의 추상 개념을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그의 교훈 3: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마라

Piet Mondrian, Composition with Yellow, Blue and Red, 1937-1942

그는 성인이 된 이후에 계속 거처를 옮기며 살았다. 암스테르담. 네덜란드의 시골마을, 파리. 런던, 뉴욕 등 다양한 곳에 살며 작품 활동을 하였다. 다른 도시에서의 삶은 다양한 영감을 주었다. 파리에서 그는 파블로 피카소와 조지 브라케 등의 작가에게 입체파를 배워 그의 작품에 녹여냈다. 시골에서의 삶은 우리에게 친숙한 격자 무늬 추상화의 시작점이 되었다. 지역 교회를 정면에서 바라보며 영감을 얻은 몬드리안이 교회의 형태를 해체하여 단순한 수직 수평선으로 이루어진 격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변화 이후 파리로 돌아온 그는 격자에 기본 색 (빨강, 노랑, 파랑)과 비색 (검정, 흰색, 회색)을 채워 넣기 시작했고 뉴욕으로 넘어와서 그의 형태를 완성 하였다.

그의 교훈 4:

진화는 천천히 일어난다.

인내심을 가지고 행동하라.

Piet Mondrian, Broadway Boogie-Woogie, 1957

그의 작품 성장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 하긴 했지만 사실 그의 예술적 진화는 빠르게 일어나지 않았다. 자신의 시그니처 스타일인 신 플라스틱주의의 격자화 된 추상화는 그가 40대 후반이 되어서야 완성되었다.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느리지만 조금씩 발전하는 창의적인 진보를 소중히 여겼다. 이를 위해 그는 그가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재 작업을 하였다. 이러한 반복과 인내의 시간을 그는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소중하게 여겼다. 친구들과의 편지에서 그는 자주 순수한 표현을 찾는 과정이 느리고 반복하는 작업이지만 조금씩 자신의 만족을 위해 다가가며 안락함을 느낀다고 이야기 했다. 또한 그가 작업하는 급진적인 추상화에 대해서도 그는 이미 일반 대중과 예술 기관들이 완전한 추상화를 바로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점진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가치관이 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작품이 인정 받기 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의 작품을 종착역으로 생각하지 않고 완전한 추상화를 위한 과정으로서 생각하면서 그는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그의 과정을 즐길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생애의 마지막 몇 달 동안도 그의 작품관에 대해 끊임없는 탐구를 하며 생애를 마무리하였다.

출처:arts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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