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02
예술과 사랑에 빠진 패션
우리는 유명 예술가들이 입는 옷에 관심을 가진다. 20세기 이래로 아티스트들은 주요 패션 브랜드의 뮤즈가 되어왔고, 최근에는 이들이 핀터레스트(개개인의 취향에 맞춘 사진이나 영상을 보여주는 사이트) 포스팅의 소재로도 쓰이고 있다. 예술가들은 색과 형태에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패션은 그들 내면의 창조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영국의 작가 테리 뉴먼은 자신의 저서 전설적인 예술가들과 그들이 입는 옷(2019) 속에서 “예술가들의 일은 문화를 비평하고, 그들의 작업에 영혼을 불어넣으며, 우리가 존경할 수 있는 고무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이 책에서 뉴먼은 주요 예술가들의 패션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으며, 이제까지 그들의 예술과 개인적인 스타일이 런웨이와 시각 예술 속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모방되어 왔는지를 밝혀내고 있다.
패션브랜드들은 종종 유명한 예술작품과 활동에 대한 존경을 표하곤 한다. 예를 들어, 제레미 스콧이 이끌고 있는 패션 브랜드 모스키노는 팝 아트를 많이 참조하여 디자인한다. 또한 브랜드들은 예술가들의 작품 뒤에 숨겨져 있는, 드러나지 않은 점을 포착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캘빈 클라인의 디자이너인 라프 시몬스는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와 협업하여 2017 스프링 남성복 컬렉션에서 이 두 가지 아이디어를 모두 표현해냈다. 이 컬렉션의 남성 모델들은 메이플소프의 흑백사진이 프린트되어 있는 불룩한 단추가 달린 셔츠를 입었으며, 부드러운 곱슬 머리와 가죽 뮤어 모자를 이용하여 이미 고인이 된 예술가들과 비슷한 스타일링을 했다. 이는 메이플소프의 S&M(사디즘과 마조히즘)에 대한 개인적이고 예술적인 관심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이 룩들은 1971년 인터뷰의 전 편집자인 밥 콜라셀로가 메이플소프와 만났을 때 그가 메이플소프에 대해 받은 인상을 환기시켜준다. 콜라셀로는 “메이플소프는 예쁘지만, 강인하고 중성적이며 거친 느낌이 들었다,” 라고 2016년 잡지 베네티 페어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2014년 가을 셀린느 컬렉션은 진흙투성이의 남성용 부츠를 신었던 여성 종군 사진작가 리 밀러(Lee Miller, 1907-1977)의 이미지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밀러는 아돌프 히틀러의 개인 욕조 안에서 사진을 찍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밀러의 간소화된 의복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보그지의 일을 하는 도중 입었던 의상들인데, 패션계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어 왔다. 셀린느의 디자이너 피비 필로는 밀러의 부츠를 컬렉션의 시작점으로 분명하게 정했다. 쇼가 끝난 후, 피비는 “밀러는 그 당시 상당히 과격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 시대에는 남성의 옷을 입어 주목이 집중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그저 평범해 보이는 스타일이다.” 라고 말했다.
예술가들의 개인적인 스타일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종종 자신의 브랜드의 일부가 된다. 몇몇 예술가들은 자신의 시각적 미학을 스타일에 반영한다. 미국 화가인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는 낡은 길거리 옷과 디자이너의 정장 재킷을 매치하고,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는 상징주의로 가득한 멕시코 전통 의상을 입으며,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7)는 남서 지방의 액세서리와 미니멀한 실루엣이 드러나는 옷을 매치한다. 또한,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는 선명하고 색상이 구분되어 있는 옷을 입는다. 버버리의 전 수석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자칭 호크니의 팬인데, 그는 “나는 호크니가 색상을 매치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당신은 그 스타일이 얼마나 의도적으로 완성된 것인지 모를 것이다.” 라고 말했다.
한편 몇몇 예술가들은 패션 트랜드에 저항하기도 한다. 행위예술가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1946~) 는 오뜨 꾸뛰르를 입긴 하지만, 젊은 예술가로서 매우 급진적이고,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거칠고 영적인 이미지를 세심하게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2005년 보그지에서 이야기했다. 또한 그녀는 1970년대에는 아티스트로서 패셔너블하다는 것이 재능 부족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여겨졌었다고 설명했다.
예술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반복된 패션 스타일을 작가의 스타일로 만들어, 하나의 아이콘으로 상징되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989-1967)의 중산모나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 1929~)의 밝은 빨간색의 단발머리를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실제로 여러 종류의 모자를 쓰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작품 속에서 자주 특징적으로 사용한 것은 베레모였다. 트렌드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서 피카소의 위치는 런던 현대 미술관에서 개최된 두 번의 전시회 이후 더욱 확실해지게 되었다.
몇몇 예술가들은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에게 그들의 아이디어를 공유하여 줌으로써 현대 패션에 좀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1983년, 디자이너인 말콤 맥라렌과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미국의 아티스트인 키스 헤링(Keith Haring, 1958-1990)과 접촉하여 헤링의 거리 예술을 런웨이를 위한 선명한 색상의 외출복으로 탈바꿈하였다. 야요이 쿠사마는 1980년대에 블루밍데일즈를 위한 컬렉션을 만들었으며, 최근에는 루이비통, 마크 제이콥스와 협업하기도 했다. 제프 쿤스(Jeff Koons, 1955~) 또한 H&M과 스텔라 멕카트니, 그리고 루이비통과 콜라보레이션을 했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죽은 이후에, 그들의 스타일이 작가와 협의 없이 활용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러시아 구성주의 작가인 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er Rodchenko, 1891-1956)는 러시아의 활동복을 디자인하였었다. 로드첸코의 사후, 1975년 영국의 보그지에서는 미국 모델인 제리 홀이 로드첸코의 디자인에 영감을 받은 공산주의 풍의 빨간 의복을 선보였다. 아마도 이 사실은 그에게 당황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또한 미국 화가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는 패션을 좋아했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적 차별을 받곤 했다. 그는 꼼데가르쏭의 모델이기도 했고, 아르마니와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을 좋아했지만, 이 흑인 젊은 작가는 그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바스키아의 작품은 포에버21, 세포라, 그리고 더글라스 해넌트 라인에 포장용 디자인으로 콜라보레이션되고 있다.
프리다 칼로 스타일의 상품화는 가장 두드러지는 사례 중 하나이다. 그녀는 패션으로 존경 받았고, 패션이 그녀의 예술의 본질적인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러 자화상 속에서 자수가 놓인 위필 블라우스(멕시코의 토착 원주민들이 입는 민족 의상으로, 독특한 색채와 직물로 만들어진 소매 없는 블라우스), 멕시코 후치탄 지방의 머리 장식, 긴 스커트, 그리고 꽃과 보석, 땋은 머리로 장식한 채 등장한다. 칼로의 패션 선택은 그녀의 신체적 장애 및 유산과도 관련된다. 그녀는 두 개의 종 모양 장식이 달린 빨간 가죽 부츠에 자신의 보철 다리를 숨기곤 했다. 또한 미술사학자 헤이든 헤레라는 “칼로가 화려한 멕시코 전통의상인 테바나를 입는다는 것은 새로운 정체성으로 탈바꿈한다는 의미였으며, 계속해서 그 의상을 즐겨 입었다.” 라고 말했다.
칼로의 의복과 악세서리는 그녀의 정체성의 가장 깊은 곳을 보여주고 있으며, 패션계에서 계속해서 재해석되고 있다. 2002년 크리스찬 라크르와, 2004년 고티에, 2012년 꼼데갸르쏭, 그리고 2018년 바비에 이르기까지 많은 브랜드들이 칼로의 패션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프리다 핀, 프리다 티셔츠, 프리다 매니큐어, 프리다 팔찌 등을 통해 가까운 곳에서 칼로의 얼굴을 발견할 수도 있다. 예술의 영역이 넓혀지면서 작품과의 콜라보레이션은 새로운 디자인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출처:news.art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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